히틀러의 차, 미국을 누비다
미국인 운전자가 폭스바겐 비틀을 운전하고 있었다. 잘 달리던 차가 멈추자 그는 차에서 내려 후드(보닛)를 연다. 고장 원인을 묻는 조수석 동승자에게 운전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더 이상은 갈 수 없어. 엔진이 없어졌다고!"
지나가다 이 모습을 지켜본 또 다른 비틀 운전자가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걱정 말아요. 당신은 운 좋은 거라고요. 내 트렁크에 있는 여분 엔진을 드리죠."
1950년대 미국에 진출한 폭스바겐 비틀에 관한 우스갯소리다.
미국인들은 비틀을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곤충 같은 생김새와 작은 엔진이 다가 아니었다. 도무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엔진이 뒤에 있었고 트렁크가 앞이었다. 공냉식 엔진이니 냉각수와 냉각 시스템조차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독일에서 국민차를 타 본 사람이 아니고서야 비틀을 살 이유가 없었다. 독일 본사는 국민차의 수출명을 '폭스바겐 세단'으로 정했는데, 미국인들의 눈에는 딱정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판매도 기대에 못 미쳤다.
비틀의 판매 상승은 엉뚱한 곳에서 비롯했다. 1958년 오리건 주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비틀 한 대에 최고 33명의 학생이 우겨져 타는 진기록을 세웠다. 물론 지붕 위에도 올라갔다. 요즘으로 치면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바이럴 마케팅이 밈을 만든 것이다.
비틀은 당시 과잉의 극치를 달리던 미국차에 비해 작고 경제적인 데다 특이한 모양 때문인지 미국에서는 마이크로버스와 함께 히피들의 상징으로 통했다. 히틀러의 지시로 개발된 차가 히피의 상징이 되다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밈이 유행하고 히피가 비틀을 몰며 옥외광고를 시전하자, 셀럽들이 반응했다. 배우 폴 뉴먼은 비틀을 무려 5대나 보유했고, 존 레넌도 1대를 갖고 있었는데, 비틀즈의 앨범 'Abbey Road' 자켓 표지에서 볼 수 있다.
'셀프 디스'의 원조, DDB의 광고 캠페인
"유태인 동네에 가서 나치 차를 팔게 생겼군."
광고대행사 DDB의 경영진이 탄식하며 한 말이다. DDB는 기존 자동차 광고와는 다른 캠페인을 전개했다. 차의 크기와 구조, 디자인이 지금까지 미국에서 출시한 차와 다르니 역발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디트로이트는 매년 전 모델의 디자인을 바꿔댔다. 유행을 선도하며 튀는 소비 행태로 미국 경제 전체가 굴러갈 정도였다. 그러나 비틀은 모든 세대 모델이 거의 동일했다. DDB는 이 점을 파고들어 비틀의 타겟을 기존의 지위 추구형인 사람들과 다르게 설정했다. 시대를 풍자하는 마케팅으로 비틀은 대항문화를 표상하는 시대의 아이콘이 됐다.
1969년 비틀은 '러브 버그'라는 영화에도 출연했다. 허비라는 사람과 다름없는 역할로, 볼 장 다 본 경주차 운전자인 주인이 허비의 도움으로 우승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한다는 줄거리다. 허비가 나오는 속편은 3편이나 제작됐고 텔레비전 시리즈도 나왔다.
일본 차의 약진
1970년 대기 오염 방지법 제정으로 자동차 제조사들은 배기가스를 대폭 줄여야 했다. 공냉식 엔진으로 대기 오염 방지법을 지키기 힘들었다. 설상가상으로 1973년 아랍 지역에서 석유 금수 조치가 내려졌고, 더 많은 미국인이 독일이 아닌 또 다른 패전국 일본이 만든 소형차를 구매했다.
혼다의 시빅은 수냉식 엔진에 전륜구동으로 무장해 비틀을 압도했다. 기동성, 연료 효율, 조종성, 가속 능력이 더 낫다는 얘기다.
폭스바겐은 1974년 수냉식 엔진을 앞에 장착한 대셔를 출시했지만, 4,000달러라는 가격은 시빅보다 35%나 비싸 경쟁력이 떨어졌다.
공냉식 비틀은 2003년 멕시코 푸에블라에서 마지막으로 생산됐다. 무려 65년 간 총 2150만 대를 팔았다. 포드 모델T가 1500만 대였으니, 비틀은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차라는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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