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얼마 전 이사했다. 이사 오기 전 살던 아파트에서는 정해진 수거일이 아니어도 재활용 쓰레기를 배출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사는 아파트는 목요일 오후 2시에서 금요일 오전 8시 외에는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수 없다.
이사도 왔겠다, 재활용 쓰레기를 담을 플라스틱 쓰레기통의 지름신이 강령했다. 오픈마켓에서 20리터 들이 사각형에 바퀴까지 달려 편의성이 높은 걸 구매했다. 플라스틱, 유리병, 캔을 담을 용도로 3개나 샀다. 아뿔싸, 재활용 쓰레기는 그 3가지 외에도 비닐, 종이, 스티로폼으로 넘쳐났다.
결국 대형마트 장바구니를 모자란 재활용 쓰레기를 담는 용도로 활용했다. 매일 버릴 때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금요일 오전부터 목요일 오후 2시까지 일주일 간 쌓여가는 재활용 쓰레기를 보며 새삼 환경을 돌아보게 됐다.
해법은 간단하다. 재활용품을 쓰지 않는 것이다. 말이 쉽지 어떻게 실천할까.

어쩌면 조금 번거롭지만 재활용품을 쓰지 않고 알맹이만 사면 될지 모른다. <알맹이만 팔아요, 알맹상점>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하기 위한 안내서다. 이 책의 저자들은 망원동에서 제로 웨이스트 가게 '알맹상점'을 운영하는 호모 쓰레기쿠스다.
이들이 운영하는 알맹상점은 한국 최초의 리필스테이션으로, 말 그대로 알맹이만 판매한다.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를 모으고 동시에 시민 행동과 목소리를 모으는 커뮤니티 거점 공간이기도 하다.
알맹상점의 목표는 분명하다.
리필스테이션에서 알맹이만 사기
자원 모으기에 동참하기
기업도 정책도 바꾸는 캠페인 참여하기
가성비 대신 가치 소비하기
4가지 사명은 단순하지만, 번거롭기도 하고 재활용품 사용에 비해 비용마저 더 들어가는 일이다. 알맹이만 사려면 집에서 용기를 가져가야 하고, 점점 오르는 물가에 가성비를 포기하기 쉽지 않으니 말이다.
게다가 저자들의 세상을 바꾸기 위한 노력을 국가 시스템이 호락호락 놓아주지 않았다. 화장품을 덜어 팔려면 '맞춤형화장품조제관리사' 자격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평균 합격률이 15%에 지나지 않는 자격증 시험에 합격했지만, 이번에는 소분할 경우 미생물 오염이 우려되고, 있어 보이는 포장 용기 덕에 비싼 가격이 가능한 화장품을 대용량으로 구해야 했다.
어렵게 300kg 단위의 화장품을 구해 사다 쟁일 때는 망하면 자기 용기를 가져온 사람들에게 화장품을 퍼주고 문을 닫자는 마음이었단다. 가게를 차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서가 아닌 제로웨이스트가 사람들의 삶에 파고드는 것을 보고 싶었다는 저자들의 사명이 자못 비장하다.
알맹상점의 특별한 점은 또 있다. 손님들에게 종이팩, 병뚜껑, 말린 커피 찌꺼기 등 쓰레기를 받아 모으는 것이다. (탄소발자국을 줄이기 위해 택배로는 받지 않는다.) 무엇보다 쓰레기가 될 수 있는 것을 신경 써서 관리한다면 자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품목이 조금씩 다르지만 다른 제로웨이스트 가게에서도 자발적으로 거점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자원들은 필요한 곳과 재활용이나 재사용이 가능한 곳으로 보낸다. 혜택도 지원도 없고, 품이 많이 들고 공간을 차지하며, 때로는 오히려 마이너스가 나는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 재활용이 어려운 쓰레기를 어떻게든 활용해 자원으로 순환시키고 싶은 간절함, 쓰레기에 진심인 마음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상점 일이라면 타협이 절대 없는 세 명의 대표가 깐깐한 기준에 맞춰 고른 친환경-제로웨이스트 물건을 소개한다. 유통 중 쓰레기가 적게 나오는 제품, 소재를 재활용하거나 재사용한 수명 연장 제품,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과정에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한 제품, 탄소 배출을 줄이려고 노력한 제품, 만드는 사람을 존중하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제품, 동물성 성분과 동물실험을 배제한 비건 지향 제품 등 기준은 크게 여섯 가지로 세웠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을 바꾸고 가치 소비 제품을 선물하는 것만으로도 환경 문제 개선에 보탬이 될 수 있다.
책에서 내내 세 저자는 연대의 힘을 이야기한다. 알맹이만 사려고 ‘용기 낸’ 사람들이 없었으면, 쓰레기와 목소리를 모아준 시민들이 없었으면, 이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이 책에서 만나는 것은 결국 희망이다. 작아도,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책을 읽는 당신의 단단한 마음이 더해지길, 서로 응원하며 같이 더 나은 현실을 만들어갈 수 있기를 기다린다.
*사족
책장을 덮으며 표지를 보니 친환경 재생 용지에 콩기름 잉크를 사용했고, 자연순환을 위해 코팅을 하지 않았단다. 저자들의 진심이 오롯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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