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은 어디에서 살아갔을까? 정답은 지금은 주변에서 보기 힘든 '판자촌'이다. 오월의 봄에서 펴낸 <가난이 사는 집 - 판자촌의 삶과 죽음>은 한때 서울 인구의 40%가 살기도 했던 판자촌의 역사를 통해 한국의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의 역사를 추적한다.

판자촌의 형성과 밀집, 그리고 소멸 과정은 곧 한국경제의 성장 과정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한국 자본주의의 폭력성도 숨어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살던 집을 잔인하게 철거하고, 그들을 내쫓는 과정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누군가는 큰 이익을 봤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쫓겨나야만 했다.
“실제 판자촌의 역사는 철거의 역사나 다름없었고, 그에 저항해 싸운 역사이기도 했다.”(153쪽)
이후 철거민 싸움은 사당동, 상계동, 돈암동, 오금동, 구로동 등 100여 곳이 넘는 곳으로 확대되었다. 초기에는 학생운동권이나 종교계 등의 도움을 통해 조직화되기도 했지만, 차츰 주민들이 스스로 연합조직을 만들고 이끌어갔다. 1987년 ‘서울시철거민협의회’(서철협)를 시작으로 1990년 ‘주거권 실현을 위한 국민연합’(주거연합) 등이 이런 차원에서 만들어졌다. 책은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싸웠던 제정구, 정일우, 허병섭, 고광석, 김흥겸 등 빈민운동가들도 조명하고 있다. 저자 또한 이 당시 철거민운동에 함께했다.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도시는 가능할까?
판자촌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싼 집이 필요한 사람들은 존재한다. 저자는 이들이 살아갈 수 있는 ‘싸고, 좋은 집’을 우리 사회가 갖춰야 하며, 더 좋은 조건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쫓겨나지 않는 개발 정책이 필요하며, 그런 점에서 도시재정비의 개발이익은 소유자뿐 아니라, 거기서 살아가는 가난한 계층, 나아가 도시 전체의 발전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래야 여러 소득계층, 여러 연령층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도시가 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가 좋은 집에서 살 수는 없다. 그래도 최대한 모두 싸고 좋은 집에서 살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모두가 좋은 동네에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어느 동네든 안전하고 쾌적하며, 편리한 생활시설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도시에 부자나 중산층들만 살 수 없다. 도시는 여러 소득계층, 여러 연령층, 여러 직업군이 함께 살고, 만들어가는 공간이다.”(305쪽)
무엇보다 빈곤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 한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은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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