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의 모델T가 미국인에게 미친 정신적, 육체적, 미학적 영향에 관해 누군가 나서서 깊이 있게 써야 한다. 적어도 두 세대가 클리토리스보다 자동차 코일에 관해, 태양계 행성보다 유성 기어 장치(planetary system of gears)에 관해 더 많이 알았다."

노벨문학상과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존 스타인벡이 그의 소설 <통조림 공장 골목>에 쓴 말이다. 포드 모델T가 출시된 이후 바뀐 사회 변화를 특유의 필치로 풍자한 것이다.
자동차 칼럼니스트 폴 인그래시아는 한술 더 떠 모델T를 <창세기>를 원용해 설명한다.
"헨리가 모델T를 낳고, 모델T가 대량 생산을 낳았으며, 대량 생산은 하루 5달러를 공임을 낳았다. 그리고 이 모두가 합세해 중간 계급과 교외와 쇼핑몰과 맥도널드와 타코 벨과 드라이브 스루 은행과 오늘날의 교양 없는 속물들이 사랑하는 다른 여러 가지를 낳았다."
포드 모델T가 얼마나 대단하기에 작가들은 이토록 찬양하는 것일까.
모델T가 이끈 혁명
모델T는 1908년 헨리 포드가 생산했다. 이름이 '모델T'인 이유는 포드가 만든 이전 차들의 이름이 모델N, 모델R, 모델S였기 때문이다. 당시 다른 회사들은 화려하고 비싼 자동차를 만들었다. 헨리 포드는 단순하고 실용적인 모델T를 출시했으니 파격적인 일이었다.

"내가 만드는 자동차는 대중을 목표로 한다. 웬만큼 버는 사람이면 누구나 한 대씩 가질 수 있게 하겠다. 가족과 함께 대자연에서 즐거운 시간을 만끽하게 하고 싶은 것이다." - 헨리 포드
모델T의 출시 가격은 850달러로 처음부터 싼 건 아니었다. 웬만큼 버는 사람이 한 대씩 갖게 된 건 1924년으로, 260달러에 살 수 있었다. 이는 컨베이어 벨트로 만든 이동식 조립 라인 덕분에 생산 속도가 빨라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생산 속도는 헨리 포드가 고집한 검은 색이기만 하면 원하는 색을 고를 수 있는 것도 한 몫 했다.
포드는 이에 그치지 않고 노동자의 일당을 당시 공임의 2배인 5달러로 올렸다. 숙련공들이 몰릴 수밖에 없었고,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다. 이들이 소비 주체가 되면서 지역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고, 헨리 포드의 바람대로 누구나 모델T를 가질 수 있었다.
모델T의 핵심 부품은 바나듐으로 제작됐다. 당시에는 새로운 유형의 강철로 기존의 탄소강보다 가볍고 튼튼했다. 4기통 엔진은 일체형 블록이었고 헤드 부분을 떼어낼 수 있었는데, 엔진 내부로 접근하기가 쉬워 제작과 수리가 간편한 매우 혁신적인 설계였다.
헨리 포드의 기행

모델T의 성공 때문일까. 헨리 포드의 기행이 시작된다. 그는 1915년 12월 유명 인사들을 대동한 채 '평화의 배'를 타고 노르웨이로 향했다. 유럽의 제1차 세계대전을 중재, 조정하려는 목적이었다. 당연히 평화의 배 프로젝트는 완벽한 실패로 끝났다.
포드는 1918년 미시간 주의 연방 상원의원에 입후보했다. 공화당과 민주당 경선 모두에 참가, 공화당은 떨어지고 민주당 경선은 통과해 특이한 행보를 보였다. 민주당 총선에 나선 그는 결국 근소한 차로 패배하고 말았다. 모델T로 돈을 벌고도 선거 운동에 돈을 거의 쓰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충격에 빠진 포드는 사설탐정들을 고용해 투표 사기 여부를 조사했지만, 아무 것도 안 나왔다.
출판업계도 기웃거렸지만 신통치 않았다. 고향에서 발행되던 신문 <디어본 인디펜던트>를 인수했지만, 그리스도 교도가 서로를 죽이게끔 유태인들이 제1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는 포드의 주장에 독자들이 등을 돌렸다.
전기차 왕이 될 뻔했던 헨리 포드

전기차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1824년 헝가리의 발명가 야노시 예드릭이 전기 모터를 이용해 '탈 것'을 만든 게 최초다. '자동차'라고 부르기에는 허술해서, 1834년 스코틀랜드의 사업가 로버트 앤더슨이 최초의 전기 '자동차'를 만든 것으로 본다. 그가 만든 자동차는 충전이 되지 않는 1차 전지로 움직였기 때문에 1회용에 불과했다.
1835년 네덜란드 흐로닝언 대학의 지브란뒤스 스트라틴 교수와 그의 제자 크리스토퍼 베커가 소형 전기 자동차 모형을 설계했지만, 전기로 움직이는 마차에 불과했다.
실용적인 전기 자동차는 1842년 미국의 토마스 데이븐 포트와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데이비슨이 만든 것이다. 차축에 영구자석이 달려 있고 그 주위를 전자석으로 둘러싸 바퀴를 움직였다. 그러나 충전이 불가능한 전지를 장착해 기존 '탈 것'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없었다.
재충전이 가능한 전지를 발명한 것은 프랑스의 물리학자 가스통 플랑테였다. 덕분에 전기 자동차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19세기에 이미 전기 자동차는 상용화 됐다는 얘기다.
"저는 우리가 1년 이내에 전기 자동차 제조를 시작할 수 있길 바랍니다. (중략) 에디슨 씨와 제가 그간 값싸고 실용적인 전기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몇 년간 함께 일해온 건 사실입니다. (중략) 다만 문제가 있다면 재충전 없이 장거리를 달릴 수 있는 가벼운 무게의 배터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에디슨 씨는 지금 그런 배터리를 만들기 위해 계속 실험 중입니다." - 헨리 포드, <뉴욕타임스> 인터뷰, 1914년

"저는 궁극적으로 전기 모터가 모든 대도시의 트럭에 널리 쓰이게 될 것이며, 전기 자동차는 미래의 가정용 교통수단이 될 거라고 믿습니다." - 토마스 에디슨, <오토모빌 토픽스> 인터뷰, 1914년
헨리 포드와 토마스 에디슨의 인터뷰에서 볼 수 있듯이 예나 지금이나 전기 자동차의 핵심은 배터리다. 다만 위의 사진을 끝으로 '에디슨-포드 프로젝트'의 후일담은 찾아 볼 수 없다.
음모론자들은 석유 카르텔이 포드와 에디슨을 찾아가 두 사람이 진행하던 전기 자동차 프로젝트를 포기하라고 압력을 가했다고 주장한다. 모든 음모론이 그렇듯이 포드-에디슨 음모론은 그럴듯한 스토리가 있다. 1914년 뉴저지 주 웨스트오렌지에 있는 에디슨의 작업장에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가 일어나 모든 것이 타버린 것이다.
에디슨의 작업장 화재 이후 포드 모델T가 불티나게 팔려 나갔으니 이래저래 전기 자동차는 희대의 비운아였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지만, 에디슨-포드 프로젝트가 성사됐다면 지구 온난화는 없었을 테고, 코로나 19로 전 세계가 고통을 받는 일도 없었을까. 누군가 소설로 쓰거나 웹툰으로 그렸으면 좋겠다. 혹시 아는가. 송중기가 헨리 포드의 손자로 환생하는 <재벌집 막내아들> 시즌2로 전 세계를 호령하게 될지. (이 판타지 원안의 권리는 기자에게 있으니 제작사는 연락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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